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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삶

우암 송시열의 사당 ... 여주 "대로사(大老祠)"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대학자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조 11년(1633) 생원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을 거쳐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으며,
 후일  북벌론을 추진하며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봉림대군(1919∼1959)은 그 후 왕(효종)이 되었으며...
우암 역시 입궐하여 이조판서등 주요 요직을 두루 맡아 일했으며~~

 조선 17대 국왕이된 효종 (재임기간 : 1645~1649)은 장수하지 못하고 
4년 후 이곳 여주 영릉(寧陵)에 묻하게 되었는바... 

 그후 송시열은 여주에 머물 때마다 이 장소에서 "영릉"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
 또 후진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후일 ~~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수행한 김양행(金亮行)에게 우암의 사당을 짖게 하였는데 ~~   

사당은 그가 늘 영릉을 바라보던 그 장소에 .. 
영릉을 향하여 서향(西向)으로 지었다 합니다.

 정조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인 "대로(大老)"의 명칭을 붙여
 "대로사(大老祠)"라고 하고 ...
 친히 비문을 지어 .. 친필로 된 "대로사 비(大老祠 碑)"를  세웠답니다. 

 

 

 

 

 

 

 

 

 

 

 

 

 

 

 

 

 

 

 

 

 

 

 

 

 

 

 




이곳은 단순 사당에 한하지 않고 서원도 겸하고 있었는 듯....
"대로서원"이란 현판도..강당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1873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있었는바 ...
이때 우암 송시열 서원 44개나 철폐 되었는데 ~~~

이 ‘대로사(大老祠)’는  "강한사(江漢祠)"라 개칭하며...
철폐를 면하게 되었답니다. 

 

 

 

 


ps   :  홍살문 까지 설치된  .. 반대편 정문 은 걸어 잠그고 ....
이런 안내간판 하나 세우고 뒷문을 사용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


 

 

 



사진 :  2024. 11. 07  여주 대로사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