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 칼럼기고자 (sahngwhe@hanmail.net">sahngwhe@hanmail.net)
자유가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빠삐용은 남미의 프랑스령 기니아에서 1931년부터 1945년까지 14년간 수형생활을 하였으며 그 14년간 영화속에서는 3차례의 탈출을 기도한 끝에 마침내 성공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존인물이었던 앙리 샤리에리의 자서전에 따르면 9차례의 시도끝에 성공한 것으로 되어있다. 실로 집요한 '자유에의 의지'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영화 속에서 빠삐용은 억울하게 포주살해의 누명을 뒤집어 쓴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탈출에 성공하여 베네주엘라에 '자유인'으로 정착한 이후 빠삐용은 1967년 단 한차례 프랑스정부로부터 단기체류의 허가를 받아 파리를 며칠간 방문할 수 있었는데, 프랑스 정부는 결코 그의 무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 정착을 허용하지도 않았고 다만 범죄의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조치였을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빠삐용과 드가는 탈출기도에 따른 처벌로 2년간의 독방수감의 형벌을 받고 상어떼가 득실거려 더이상 도저히 탈출시도조차 불가능 하다는 절해고도 '악마의 섬'에 보내진다. 미국으로 치면 샌프란시스코 해변에서 손에 잡힐 듯이 빤히 보이지만 근처의 상어떼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한 '알카트라즈' 섬인 셈이다. 영화에서 빠삐용은 '악마의 섬'에 백발과 주름투성이의 얼굴에 이도 모두 빠진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도착하지만 그때 빠삐용의 실제 나이는 40도 채 안된 한창나이였다. 아마도 빠삐용의 탈출을 더욱 극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심한' 노인의 형상을 만든 모양이다. '악마의 섬'에 도착한 빠삐용은 그보다 먼저 그곳에 보내진 역시 머리털이 모두 빠진 드가 '할아버지'와 재회한다. 그곳에서 '자유'에 대한 빠삐용과 드가의 입장차이가 노정되고 드가의 고민은 깊어간다.드가의 석방을 위해 변호사와 만나던 드가의 아내는 변호사와 '눈이 맞아' 이미 드가를 버렸다. 드가는 이제 무일푼이 되었고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였다. 그에게 있어서 탈출은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드가는 자신이 악마의 섬을 빠져나가 어디로 간다고 해도 돈 한푼 없이는 자신에게 아무런 '자유'도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제 드가에게 있어서 '악마의 섬'이나 파리나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나마 그곳에서 오두막 한 채와 몇 마리의 돼지, 그리고 그에 딸린 메뚜기 이마빡만 채마밭을 가꿀 자유도 파리에서는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드가에게 있어서 '자유'란 탈출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의 섬'에 남음으로써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자유'란 추구의 대상에서 회피의 대상으로 변한 셈이었다. 반면, 사막 한가운데 버려져도 능히 시원한 맥주를 곁들인 통닭을 뜯어 먹으며 유유히 살아올만한 요령과 생존능력을 보유한 빠삐용에게 있어서 탈출을 통해 자유만 얻을 수 있다면 실현 가능한 희망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빠삐용에게 있어 탈출과 자유는 여전히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드가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분명 빠삐용이 자신에게 또다시 탈출의 유혹을 해올것도 예견하고 있었다. 드가는 빠삐용이 '악마의 섬'에 도착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도 외면해 버리고, 그를 발견한 빠삐용이 반가움에 다가오자 못 본 척하고 도망치기도 한다. 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우하게 되고, 마침내 드가의 오두막에 식사초대를 받은 빠삐용이 다시 탈출을 제안하자 드가는 안절부절 못하다 마침 자신의 채마밭에 들어와 뭉개는 애꿎은 돼지를 난폭하게 두들겨 쫓아내는 반응를 보인다. 드가에게 있어 빠삐용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꾸고 있는 그마나 허용된 '작은행복'까지 짓밟는 돼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가는 빠삐용의 탈출계획에 방관자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동참한다. 마침내 빠삐용이 절벽에 부서지는 일곱번째 파도를 타고 나가면 안전하게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대발견'을 하고 '유레카'를 외치고 드가도 그 발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탈출하는 날 두 개의 야자더미를 일곱번째 파도에 맞추어 던져놓고 드가는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런 드가를 말없이 응시하는 빠삐용도 드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한다. 아무말 없이 드가를 잠깐 포옹하여 작별을 고하고 빠삐용은 바다로 뛰어든다. 드가는 절벽에 남은 채 야자더미에 몸을 실은 빠삐용이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울음과 웃음이 뒤범벅되기도 하고 백치 같은 표정이 되기도 하면서 하염없이 바라본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탈출 성공 후,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실제 빠삐용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야자더미 위에 몸을 뉘이고 망망대해를 둥둥 떠가며 "나는 자유다(I am free!)"라고 외쳤듯 정말 빠삐용이 그가 그토록 열망하였던 '자유'라는 것을 찾기는 찾았을까?> 그가 60세 되던 해인 1967년 카라카스의 대지진때 빠삐용의 잘 나가던 여관과 나이트클럽은 잿더미가 되는데 정부로부터 한푼의 재해보상도 못 받고 무일푼이 된 것으로 보아 그 영업장들은 아마도 빠삐용식의 불법, 무허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늙으막에 무일푼이 되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자리잡고 앉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집필한 것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돈방석에 앉게되고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이 영화화되던 1973년 스페인에서 암으로 사망한다. 그것이 운이 되었든, 자신의 노력이 되었든, 혹은 빠삐용같은 타고난 거칠고 잡초 같은 생존능력이 되었든 '자유경쟁'에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 기회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드가처럼 '자유'가 두려울 수 밖에 없고 '완전한 자유'라는 것을 회피하고 싶은 입장에 놓이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자유란 모든사람이 원하는 덕목은 결코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도 않는다. '무제한의 완전한 자유'란 더욱 그렇다. 영화속에서 빠삐용이 드가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옹하듯 '자유경쟁'에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경쟁원칙의 정당성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유경쟁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포옹하는 사회가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닐까? 출처: 월간중앙
'악마의 섬'을 탈출한 빠삐용은 베네주엘라에 '자유민'으로 정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잠시 광산노동자로 일하지만 제버릇 개못준다고 그곳에서도 파리에서 갈고닦은 '뒷골목' 실력을 발휘하여 곧 전당포털이, 은행털이등 '어둠의 세계'를 전전하다가 아마도 어느 전당포나 은행이나 '크게 한탕'한 밑천으로 짐작되는 자금으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제법 큰 규모의 여관과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기도 한다.
'악마의 섬'에 남은 드가의 그 이후 행적은 추적이 안 된다. 아마도 주어진 오두막에서 손바닥만한 채소밭을 가꾸면서, 돼지와 때로는 대화하고 때로는 두들겨패면서 '완전한 자유'로부터 도피한 대가로 얻어진 '제한된 자유'에 안분자족하면서 생을 마감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영화에서 '악마의 섬'에서 사망한 다른 죄수들의 사체가 그렇게 처리되었듯이 드가도 생을 마감한 후에는 배에 실려 상어밥으로 바다속에 던져졌을 것이다.
빠삐용이나 드가에게 있어 그 선택은 그들이 각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자유'였던 셈이다. 빠삐용에게 있어서는 탈출을 통해 자유의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드가로써는 '악마의 섬'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최대기대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빠삐용은 '완전한 자유'를 두려워하고 회피할수 밖에 없게된 드가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옹한다. 우리는 자유와 자유경쟁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고있다.
Yesterday's world is a dream like a river
지난날은 강물처럼 흘러 옛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that runs through my mind made of fields
내 마음 자락에 아직도 남아 있는
and the white pebbled stream
넓은 들판과 하얀 조약돌이 깔려 있던 시냇가,
that I knew as a child.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 찬 그 곳
Butterfly wings in the sun
창공을 날고 있는 나비들의 날갯짓을 통해
taught me all that I needed to see,
나는 내가 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for they sang, sang to my heart,
내 마음을 향해 노래 부르는 듯한 나비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Oh, look at me. Oh, Look at me.
"이봐요, 이봐요, 날 좀 바라보세요."
"Free as the wind, free as the wind,
"바람처럼 자유롭게, 저 바람처럼 자유롭게
that is the way you should be."
당신은 그렇게 되어야 해요."
Love was the dream of my life
사랑은 내 인생의 꿈이었어요.
and I gave it the best I know how.
사랑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이라 생각했지요.
So it always brings tears to my eyes
이제 와 그 사랑의 노래를 부르노라니
when I sing all of it now.
속절없이 눈물만 흐르는군요.
Gone like the butterfly sings
노래하는 나비와도 같았던 내 유년의 한때는
and the boy that I once used to be.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겠지요.
But my heart still hears
하지만 내 마음 속엔 아직도
the voice telling me,
속삭이는 한 소리가 있어요.
"Look, look and you'll see."
"바라보세요... 그러면 볼 수 있을 거예요."
There's no regret
내가 겪었던 온갖 고난,
that I feel for
인생의 모진 경험과 또한 즐거웠던 모든 일들,
the bitter-sweet taste of it all.
돌이켜 보니 그다지 큰 후회는 없습니다
If you love,
만약 우리, 삶을 사랑한다면
there's a chance you may fly.
나비처럼 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예요.
If you fall,
그러나 그대,
well, you fall.
주저앉아 버린다면
rather the butterfly's life,
나비의 퍼득임처럼
you have lived for a day and been free.
허무한 몸부림이 되고 말겠지요.
Oh, my heart still hears
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that voice telling me,
외치는 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Look, and you'll see."
"바라보세요, 그러면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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