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거운 산행

미륵신앙의 중심지 모악산 금산사...

율전-율리야 2007. 11. 23. 00:17
미륵신앙의 중심지 모악산 금산사...
천년 고도인 전주시 남쪽에 솟은 모악산(793.5m)은.....
 노령산맥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평선 축제'가 열릴 정도로 광활한 만경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산으로
           1972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답니다. 
 '母岳山'은...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요 
“살아서는 내가 좋고 죽어서는 자손이 좋다”는  명당으로 
'계룡산'과 더불어 무수한 민속신앙의 본거지....

오늘,  이곳에서 모 산악회 시산제가 있었는데...
산은 오르지 못 하고 금산사만 둘러 보고 왔습니다.
특히 금산사는 보통의 절과는 달리 
불교적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는 미륵신앙의 본거지 라고 하지 않는가요?
미륵신앙......?  
경전의 '연등불'이 과거세의 부처님이시고 
'석가모니'께선 현세의 부처님 
그리고 바로 '미륵불'이 미래세에 오실 부처님이시라니....
잘 알지도 못 하려니와  미륵상생신앙.. 미륵하생신앙....
긴 이야기는 지루할 것 같아 생략 합니다....
10:00시경 버스에서 하차하여
산행길로 접어드는  일행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천천히 금산사로 갔습니다.


 벚꽃은 이미 때늦은 감이 있으나...
이곳 금산사의 봄은....
 내변산의 여름, 내장사의 가을, 백양사의 겨울풍경과 더불어 
호남의 4경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조금 오르니 돌로 된 성문을 만나게 됐는데.... 

바로 그 돌문이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자신의 복을 빌어주는 사찰로 금산사를 정하고....
 왕성을 쌓듯이 금산사 주변에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데 
그때 쌓았던 성의 출입문이다. 해체 복원공사 중이더군요.
 비록 작은 부분만 남았지만 성문 옆에 견훤성이라는 알림판이 있더군요 
드라마 “왕건”에서 후백제를 묘사할 때 어김없이 촬영되던 곳...
 견훤이 왕위를 넷째아들 금강에게 승계하려다가
 끝내 장남 신검에게 유폐 되었던 슬픈 역사의 금산사...
 일주문을 지나고....

해탈교를 건너 금강문을 지나고...

  천왕문, 보제루를 지나야 본당에 이르게 되더군요.
실로 큰 규모의 사찰이었습니다.




보제루를 지나니.....
 운동장처럼  넓은 뜰을 중심으로 중앙에 대적광전이 위치하고..
우측으로 방등계단을 지나 웅장한 미륵전이 보이더군요.
좌측으로는 대장전과 범종각이 빙 둘러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위세가 당당 하였습니다.
 임진란 당시에는 일천여 “승병”들의 훈련장이기도 했답니다
599년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께서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크게 터전을 이룬 그후...
임진란, 정유재란 등 많은 전란으로...소실되고 중건되는 과정을 거쳐
가장 최근에는  1961년 송월주 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취임 후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전통찻집, 보제루, 
경비실, 목욕소 등을 신축하고
 미륵전, 대적광전 대장전 상서전 등을 해체복원하고 
방등계단 성역화 불사를 마무리하여 대사구를 완전 복원하였답니다.
그래서 사찰 전체가 튼튼하고 단청도 곱더군요.
이중, “미륵전”과 “방등계단 (戒壇)”에 대한 이야기....
미륵전 (국보 제62호)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대웅전”이 주 법당인데....
금산사의 중심 법당은 높이가 18.91m의 이 미륵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13년(1635년)에 중건한 후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있을때 해체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국보제 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3층에는 '彌勒殿(미륵전)’  2층에는 ‘龍華之會(용화지회)’
 1층에는 ‘大慈寶殿(대자보전)’, 등으로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는데

  용화지회는 ‘용화세계를 만드는 일꾼들이 모인다’는 뜻이며...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는 미륵불을 자씨보살로 번역해서 「대자보전」이라고 한다니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미륵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3층형의 외부의 모습도 아름답고 웅장 하려니와...
내부는  3층이 하나로 뚫려 있어  동양에서 가장 큰 
미륵입상(높이 12.8m)이 모셔져 있어 미륵전안의 불상크기에 놀랐습니다.

  진표율사가 처음 세운 최초의 미륵불은 33척(尺)의 쇠로 된 金佛이었답니다. 
이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36척의 나무로 만든 木佛을 다시 세웠는데.. 
 1934년에 저절로 불이 나서 타버리고 
1938년에 지금의 39척 석고불인 土佛로 중건 되었답니다.
이처럼 미륵불이 중건될 때마다 3척씩 늘어나고 있다(33→ 36→ 39). 
석가부처는 미륵불이 `3회의 설법'으로 천하창생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3회에 걸쳐 석 자씩 더 크게 만들어진 것은 미륵부처님의 도법이
 3변성도(三變成道)에 의해 이루어질 것을 예고한 것이랍니다.
처음의 금불이 목불로, 목불이 토불로 바뀐 것은 
금극목(金克木)하고 목극토(木克土)하면서 상극의 오행이치로 
겁기(劫氣)를 벗는 역사발전 과정을 상징하고 
미륵부처님 도법의 시간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니...
가히 천년고찰의 미륵의 성지임에 틀림 없는듯 했습니다.
 

방등계단(方等戒檀) (보물 제26호)
 미륵전 바로 옆 송대(松臺)위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습니다.
이는 수계법회(受戒法會)를 거행할 때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법을 전수하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 랍니다. 
이러한 예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와  개성의 불일사(佛日寺) 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유산이라 합니다. 
 또한 이 계단에는 5층석탑(보물 제25호)과 
석종형(石鐘形)의 부도 1기가 있습니다.


이 부도는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으로

좀더 자세히 보니 상단에 아홉 마리 용 머리를 조각하고
기단 네 귀퉁이에는 사자 모양을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방등계단을 내려와 나한전의 모습입니다. 


이 외에도....오랜 세월의 흔적을 푸른 이끼에서 읽으며... 
 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석공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노주(보물22호), 석련대(보물23호), 육각다층석탑(보물27호), 당간지주(보물28호), 
 대장전(보물827호), 석등(보물828호)등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모두 생략하고..
카메라에 담긴 사진 몇장으로 대신 하렵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8호)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서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
그래서 당간지주는 반드시 절의 입구에 놓이게 마련이랍니다. 
장방형의 계단식 3층 기단과 그 위에 당간을 받치고 있던 간대(竿臺),
 지주를 놓던 기단석 등이 잘 남아 있습니다.
  
노주(露柱) (보물 제22호)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금산사 기록에는 
'노주'가 잘못된 명칭이고 원래는 '광명대'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라고 하며 
기록 대로라면 화사석과 옥개석이 없어진 상태가 되겠습니다.

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인데,
 높이 1.67m, 둘레가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의 연화대좌인데다가 
더욱이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호)과 대적광전 
  고려초기 조성으로 추정되는 
지대석부터 탑신부까지 전체가 육각형인 청석 육각다층석탑으로서 
탑의 재질이 흑색의 점판암으로 된 특이한 경우인데,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공예적 석탑...
본래 기록에 따르면 9층이라 하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옥개석의 형태나 
체감율 등에서 6층 이상이 손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적광전 (보물 제476호: 1987년 화재로 지정취소)
가람의 중심에 위치한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에 본래대로 복원되었다.
대적광전이 지금의 웅장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정유재란 때 절이 전소된 후 1635년 중창 때
별도로 모셨던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과 여섯 보살을 함께 모심으로써 
여러 전각들을 대적광전 하나로 통합하여 창건한 것이다
대장전 (보물 제827호)과 석등 (보물 제828호)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장전(大藏殿)이 자리한다.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에 복발과 보주가 뾰쪽하게 돋아 남아있으며.... 
대장전은 본래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워졌답니다.

 심원암(深遠庵)에 있다는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24호)과...,
복강3층석탑(보물29호)을 보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금산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 왔습니다.








산을 오르지 못 하였지만, 산과 함께한 시간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