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삶
용주사 탐방기...
율전-율리야
2008. 11. 27. 12:30
얼마전 MBC 드라마 “이산”을 흥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생생 합니다. 드라마의 스토리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을 돌아 보고쟈 함 입니다. 당시 왕권보다 더 강했던 노론파의 당권 아래서 오랜 기간동안 왕위에 있었던 조선 왕조 21대 영조(英祖, 1694 ~ 1776)도 노론의 세력 때문에 탕평책을 제대로 쓰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 세자로 책봉 되었던 그의 아들 사도세자도 막강권력의 노론을 경계하고 소론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짐에 따라... 노론파의 모함으로 세자에서 폐위하고 끝내는 뒤주에 갖히어 죽게 되지요. 그후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 이 역시 사도세자의 아들이란 사실 때문에 온갖 노론의 방해공작과 암살기도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22대 왕(정조)이 되지요(1789.7. 11).... 취임 첫 일성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천명하며 당시 당권의 핵심인 노론의 세력과 싸우며 왕권을 강화시키고 개혁정치를 펼쳐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폐위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여 배봉산에 초라하게 묻혀있던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능을 수원 花山으로 옮겨 “현륭원(융릉)”이라 부르고 1790년 인근에 “용주사” 라는 절을 세워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게 되지요... 반면 북쪽 팔달산 아래에 “華城”을 건설(1794.1-1796.9)하여 상업/농업의 중심지이자 왕권의 중심지로 삼으며 개혁정치를 소신 있게 펼쳐 나갔지만 49세로 일찍 운명을 달리하여 아버지 무덤 옆에 묻히여 “건릉”이라 불린 답니다. 후일 이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지만 문화유산이라는 성곽의 건축기법이나 군사시설의 가치 보다는 그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은 “정조”의 숨결이 느껴지기에 자주 찾게 됩니다.
오늘 그 용주사를 다녀 왔습니다. 이 용주사는 큰 절은 아니나 불사의 구조나 배치...절의 성격..등 왕실의 냄새와 더불어 사도세자와 정조의 모습이 보이는듯한 절 이랍니다. 주차장에서 바로 절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사천왕이 모셔져 있습나다. 이 경우 다른 여타의 모든 절에서는 “사천왕문”이란 현판을 달고 있으나 이절에는 그냥 “용주사”라는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이 절은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 하였는데,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 정조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서는 “용주사(龍珠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 합니다.사천왕문을 지나면 이내 “홍살문”이 보입니다. 절간에 왠 홍살문..??? 알고 보니....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사찰이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을 지니도록 홍살문을 세웠다고 합니다.
뒤이어 삼문이 나옵니다. 좌우 문은 열려 있으나 중앙문은 닫쳐있더군요. 중앙문은 임금이 드나드는 문일 것입니다. 궁에 있는 문들의 구조와 상통하는 모습이지요.
이 삼문을 지나면 탑뒤에 대웅보전에 들어가기 위한 루문 “천보루”가 있는데... 좌우로 다른 요사채 건물들과 길게 연결되어 있는 모습은 완전히 궁의 구조였습니다.
천보루를 통과하면 “대웅보전”이 보입니다. ㄷ자 모양의 요사체에 둘러싸여 반듯한 넓은 마당이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대웅전에는 좌우에 계단이 설치 되는게 보통 이겠으나 이곳은 대웅보전 정면에 넓게 계단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왕이 드나드는 절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빛바랜 당간주의 모습도 대단한 관록으로 보였습니다.
대웅보전의 현판 좌우에는 용두가 조각 되어 있더군요. 자세히 보니 좌측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으나....
오른쪽은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었는데....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법당 내부는 삼존불이 있었고 그 뒤로 탱화가 걸려 있었는데... 화려하고 크다란 그 탱화는 김홍도 작으로 전해지고 있더군요. 많은 참배객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어 사진에는 담지 못하였습니다. 대웅보전 왼쪽에는 범종각이 있는데...이 범종이 국보120호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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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 회양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이 절을 지으며 정조대왕이 기념식수로 심은 것이라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회양목”에 아직 잔가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최근까지 살았음이 분명한데.... 몇 년전에 고사목이 되었다고 모두 아쉬워 하는 나무 랍니다.
대웅보전 오른쪽에 '호성전(護聖殿)'이 있습니다. 그 앞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새긴 비석탑이 있구요. 정조의 효심을 표현한 탑이겠지요....
호성전 내부를 들여다 보니....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가 모셔져 있더군요.
이 용주사는 불사의 배치는 조선 후기 왕실의 냄새가 물씬 나며....
내면적으로는 인근에 있는 사도세자의 능 (융능)가 더불어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정조의 효심을 가득히 안고 있는 절이라 하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정사가 어려울때 정조 임금은 보라는 듯이 아버지를 뵙는다는 명분으로 빈번히 이곳 행차를 하였다 합니다..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파에게 많은 정치적 부담을 주며 왕권을 강화시키게 되었답니다. * 날씨마져 음산한 늦가을에 혼자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며... 오후시간을 보내다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