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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삶

이명래 고약의 태동지 ... 공세리 성당


이명래 고약의 태동지 ...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을 건축한 사람은 ...

사제서품을 받고 바로 그 다음해인 1895년에 프랑스에서 부임해 온

 에밀 드비즈(Emile Pierre Devise, 1871~1933년 한국명 성일론) 신부였다.


 그는 하우현 성당을 거쳐 이곳에 본당 신부로 왔다.


공세곶 창고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성당은

그가 51세때 완공한 성당으로 ...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신부는 라틴어로 된 생약 처방전을 들고 왔다.

당시 열악했던 우리의 의료 환경을 생각하면

그 자체가 구세주 같았는지도 모른다.


당시 그 신부를 도와

성당 뜨락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물을 끓이고 약재를 넣고…

 부스럼 약을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명래 소년이었다.



그후 ... 이명래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에밀 드비즈 신부는 한평생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임종전에 귀국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서들이며 치료법 따위를 모두 이명래에게 물려주었다.


이명래는 그 프랑스 신부의 비방대로 고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명래 고약>의 시초가 이러하다.


나이가 좀 드신분 치고

이명래고약을 사용해 보지 않은 분도 계실까?

아까징끼와 더불어 한시대를 풍미한 추억의 명약으로 기억된다.



공세리 성당 뒷편에 조그만한 성당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원래  에밀 드비즈 신부가 사용하던 사제관이었다.


그곳엔 지금도 당시 고약을 제조하던 유물들이 있다.

그 박물관 창문에 있는 그림도 그런 의미일것 같다.




























사진 : 17. 04.24    공세리 성당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