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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삶

덕수궁 돌담길, 정동(貞洞)길에 얽힌 이야기들 ...

덕수궁 돌담길, 정동(貞洞)길에 얽힌 이야기들 ...


"정동전망대"인 ..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 13층에 올라 바라본 .. "덕수궁 전경"이다.

애초부터 왕궁이  아니면서도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죠 ~~


원래 조선 9대왕인 성종(成宗)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의주로 피난을 갔다기 돌아온 선조가 宮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경운궁(慶運宮)"이라 고쳐부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만을 유폐시키기도 했죠 ~~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였으며 ...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에는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규모도 좀  넓혔다.


그리고 고종 황제에게 왕권을 넘겨받은 세자 순종이

 1907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도


고종은 이곳에 거처하였는바 ...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정동(貞洞)길을 걷는다.


정동(貞洞)이라는 지명은 ...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이어서 

정릉동(貞陵洞)' 혹은 '정동(貞洞)'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태조 이성계는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지를 직접 골랐으며 

또 그 옆에 천흥사를 세워 그녀의 명복을 빌기도 하였으나

 

 1408년(태종8년) 이성계의 죽음과  더불어

태종(이방원)은  친어머니가 아닌  정릉(貞陵)을  도성 밖 의

산기슭(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겨버린다. 


형제의난을 주도했던 이방원으로서는

충분히 그렇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동길로 접어들며

정동극장 뒤에 있는 "중명전(重明殿)"을 둘러 본다.


이곳은 황제 서재로 지어지기는 했으나

1904년 경운궁의 대 화제로 인하여 고종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정사를 논하고 귀빈을 접견하기도 한 곳이란다.


처음 가 보는곳일 뿐더러

"한일늑약"이 이루어진 현장이어서


여러 내부 사진과 안내 설명문도 같이 찍어 참고 하려 했다.












재현해 놓은 을사늑약 체결 현장 모습이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저 특사, 밀사를 파견하며

각국의 대통령에게 보낸 고종의 친서이다.






중면전의 유래도 잘 설명해 놓았네요~~~






이곳을 나와 "옛 러시아곤관"을 찾아 갔다.


정동의 가장 높은 언덕위에 러시아 공관이 있었는데 ...

민비가 살해된후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세자(후에 순종)를 데리고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아관파천(俄館播遷)" 이라 한다.


아관파천 당시의 상황을 보면 ...

 나인들이 타던 가마와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몰래 이동 했다는걸 보면 상황이 몹시 어려웠던가 보다.


러시아 공관은 아래 도면과 같이 큰 건물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탑 부분만 .. 그나마도 다 허물어진것을

 197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네요.











돌아 나오며 ...

덕수궁 돌담길 마지막 부분...

이 길의 끝부분인 덕수궁 북측에 붙어있는  "영국대사관"의 양해를 얻어

돌담길 100m의 구간이 추가 개방된것을 현장 확인 하였다.


마침 담넘어로 보이는 영국대서관내의 단풍이 곱게 보여서

사진으로 남긴다.















오가는길에 둘러 보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었던  배재학당과 이화 학당 ..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改新敎) 교회당인 정동교회[貞洞敎會 ] ..

성공회 서울 대성당과 양이재 ..

눈에 보이는데로 찍었던 사진들은  모두 생략 하면서도 ..



 회화나무 고목과 캐나다대사관 사진한장 남긴다.


 수령 500년을 넘긴 이 나무는 높이 17m에 지름이 5m가 넘는 거목으로,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을,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을 이곳에 신축 하며 ...

 나무의 뿌리 위치를 감안해 일부 건축설계를  변경하고,

 지지대를 세운 후 ...  우물을 확장하는 등


대사관의 노력이 더해지며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오늘 포스팅을 마칩니다.






근대사에서 뼈 아팠던 그 시절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며 이 나라를 지키기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진 : 17. 11.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