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건강한 삶

남한산성 숭렬전(崇烈殿)과 인조의 꿈 이야기

오늘 정말 오랜만에 남한산성 길을 걸어 보았다.
"행궁"을 둘러보고 .. "숭렬전"을 둘러보았다.

이  중... 
전에 둘러보지 못했던 "숭렬전(崇烈殿)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먼저 이 <숭렬전(崇烈殿)>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 재위 BC 18~AD 28)과 
 남한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수어사(守禦使) 이서(李曙,1580~163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600년이 넘는 세월의 격차를 두고 
신분도 다른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이조의 신하 "이서"의 위패를 
어찌 한곳에 모시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원래.. 온조왕의 사당은 1464년(세조 10) 충청남도 직산에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버렸는데 ....
1639년(인조 때) 남한산성 현위치에 재건해  "온조 왕사(溫祚王祠)"라고 불리어 왔다. 


그 이면에는  "인조의 꿈 이야기"가 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난 갔을 때, 
"꿈에 웬 사람이 나타나 ...
적이 높은 사다리를 타고 북쪽 성벽의 봉암(蜂巖)을 오르는데 
어째서 막지 않는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놀란 인조가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는 성주 온조대왕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곧 잠에서 깬 인조는 온조왕에게 들은 대로 즉시 성의 북쪽을 살펴보게 했다. 
그랬더니 과연 청군이 봉암을 오르고 있어 그들을 물리쳤다. 

이렇게 온조왕의 은혜를 입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나 한성으로 돌아간 후 남한산성에 온조왕의 사당을 짓고
 봄, 가을로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온조왕사(溫祚王祠)"는   
 온조왕 묘, 백제 시조 묘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청병의 기습을 알려준 온조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자, 

그 후 온조왕이 꿈에 다시 나타나... 
"사당을 지어 주어서 고맙기는 하나 .... 혼자는 외로우니 충직한 신하 한 명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다음날 "이서 장군"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한다. 

인조는 필시 온조왕이 이서를 데려갔다고 생각해, 
함께 사당에 모시게 했다는 것이다. 

​"온조왕"과 "이서"는 무려 1,600여 년의 시간 차이를 가진 인물들로
 이렇게 "온조왕사(溫祚王祠)"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모셔진 독특한 사당이 되었다.

 

<  평시에는 출입이 통제 되어 ... 담 넘어로 찍은 사진. 맨 위쪽이 숭렬전임  >



그 후  ... 1796년(정조 19) 왕이 남한산성을 방문했을 때...
 광주 판관 이시원이, 
고구려의 사당인 "숭령전"이나, 고려의 사당인 "숭의전"도 모두 이름이 있는데 
유독 백제의 사당만 이름이 없으니 편액을 하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정조는 "숭렬전(崇烈殿)"이란 편액을 하사하면서 
온조왕에 대한 제문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여 내려보냈다 전한다. 


그후 이 사당은 "숭렬전(崇烈殿)"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한다. 

 현재 숭렬전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매년 음력 2월 중정일과 8월 조정일에 ....
아래 절차데로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매월 삭망(1, 15일)에는  참봉과 유사가 '분향례'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사진 :  22. 09. 09   남한산성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