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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사진

마이산금당사(馬耳山金堂寺)와 고금당(古金堂.나옹암)

 

 마이산금당사(馬耳山金堂寺)와 고금당(古金堂.나옹암)

 

금당사(金堂寺, Gold Temple)는 고구려 보장왕9년(650년)
열반종의 종조인 보덕국사의 제자인 무상(無上)과,
무상(無上)의 제자인 금취(金趣)에 의해 ...

 

현재의 마이산 금당사에서
서쪽 1.5KM   600m 산 꼭대기인 고금당 천상굴(천상굴)에서
금동사(金洞寺)란  사명(寺名)으로 창건 되었답니다. (삼국유사)

 

 

현재의 금당사(金堂寺)

 

 

 

그후 금동사(金洞寺)는 임진왜란때 전파(全破)된후
숙종1년(1675년)에 전북 진안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네요.

 

원래의  그 자리에는 고금당(古金堂.나옹암)이라는 암자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고금당(古金堂.나옹암)은 고려말의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懶翁庵)이라 하며
원래 금당사(金塘寺)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일명 고금당(古金塘)이라고도 한답니다.

 

 나옹(1320~1376)은 법호이며  법명은 혜근(惠勤)이며 속성은 아씨(牙氏)랍니다.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득도하였고

그뒤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승 지공화상(指空和尙)으로부터 법을 받아
1358년 귀국하여 고려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웠답니다.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었고
보우(普愚), 무학(無學) 등 높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토굴가(土窟歌) 등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입적)하였답니다.  (현지안내문)

 

 

<고금당(古金堂.나옹암)>

 

 

 

마이산 입구로 옮긴 "마이산 금당사"는
요즈음 한창 대대적인 불사가 진행되어

좀 산만하기는 하나 1-2년 후엔
멋지게 단장된 천년고찰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몇장의 사진을 남깁니다.

 

 

 

 

 

 

 

 

 

 

 

 

 

 

유독 고금당이나 금당사에 금빛이 많은 이유는 ...


이성계가 고려말 都대장 시절 
 스승인 무학대사와 마이산의 고금당(나옹암)에서 기도할때
神人(나옹왕사?)으로 부터 금척천명(金尺天命: 삼한강토를 金尺으로 재어 다스려라)을 받아


조선을 개국하고 태조가 되었다는 유래 때문에 금빛불사로 만드는 이유랍니다.

 

 

 

사진 : 15. 0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