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가 영조가 임금이 된 지 300년이 되는 해랍니다.
당시에는 신문 잡지등의 매체도 없던 시대였죠~~~
더욱이 사색당파는 자기들 주장만 하던 때 였구요~~~
민의를 살펴 정치를 하기도 참 어려웠을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영조와 정조의 탕평정책을 위한...
글과 그림을 통한 노력을 높이 평가 하면서 ~~
전시를 잘 보았습니다만 ...
이 내용을 요약 하기는 더욱 어렵네요~~~ㅎ
여기 단편적인 내용 일부만 옮겼습니 마는 ~~~
기회 내어 한번 둘러보시기를 권 하옵니다.
전시회장 초입 부분에 게시된 ....
"탕평비"와 "삽살개"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탕평비 탑본(蕩平碑 搨本)
1742년 3월 26일 영조가 쓴 탕평비 글
이는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1735∼1762)의 성균관 입학을
축하하며 세운 ‘탕평비’에 쓰인 문구.
▶ 우 :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 -
두루 사귀어 편당을 짓지 않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고,
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비이불주 식소인지사의) -
편을 가르고 두루 사귀지 못하는 것이 소인의 마음이다.
▶ 좌 : 황명 숭정 기원후 115년 되는 임술년(1742) 봄 3월 26일
직접 써서 반수교 옆에 세우라고 명하다.
삽살개
그림 : 김두랑
글ㆍ글씨_영조(1743,영죠 19)
본문 중 글씨 :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거늘,
어찌하여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
*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고개를 치켜들고
이빨을 들어낸채 시납게 짖고 있다.
이토록 사납게 표현된 이유는 그림 위 영조가 직접 쓴 글에서 알 수 있다.
삽살개는 영조의 눈에 탕평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모습으로
보였던 듯 하다.
묵매도
그림 : 오달제(1609-1637) 17세기 중반
오달재는 병자호란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29세에 청나라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오달재가 그린 ...이 그림에 숙종과 영조가 글씨를 써 더했다.
글-글씨(상단)_숙종 1705년
글(화면)_영조 1756년
사진 : 23. 12. 28 국립중앙박물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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