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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사진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보문사[洛迦山 普門寺]"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보문사[洛迦山 普門寺]"

 

 
강화 석모도 [席毛島]의  낙가산 보문사[洛迦山普門寺]는 ...


신라 선덕여왕(635년)회정대사(懷征大師)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던중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하게 되었다니 약 1400년 전 일이라고는 하나...
정확한 사료는 전해지지 않는듯 합니다.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인 이 사찰은
너무도 유명하여 새삼스럽게 전체를  이야기 할수 없겠으나...
저의 하루 사진일기로 생각하며 ... 제가 본 몇장의 사진을 내려 놓을까 합니다.

 

 
1. 보문사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 나한전

 

석실 안에 봉안된 세분의 삼존상과 한분의 관세음보살상, 19분의 나한상은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이며 ...


이 석실의 역사는 보문사 창건 역사와 거의 일치합니다.


 보문사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나한전 조성일화 이야기가 재미있어  여기에 옮겨  기록해 두려 합니다.

 

 


신라 진덕왕 3년, 보문사 아랫마을 어부들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봄을 맞아 고기잡이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만선의 꿈에 부풀어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올려보니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특이한 형상의 돌덩이가 22개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들은 사람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어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석상을 보고 놀랍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바다에 던져 넣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그물을 다시 걷어 올리자 아까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버린 석상 22개가 그대로 다시 올라온 것이 아닌가.


 어부들은 매우 놀라 허둥지둥 그물과 석상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밤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맑은 얼굴에 훌륭한 풍모를 한 노스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천축국(인도)으로부터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 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 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다시 물 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부처님의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명산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그 인연과 공덕은 후손들까지 길이 누리게 될 것이니라."

 

어부들은 새벽녘부터 일어나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바다로 나가 어제 석상을 던져 버린 곳에 그물을 쳤다.

잠시 후 걷어올린 그물에는 어제의 그 석상 스물 두 체(體)가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보문사 극락 보전 외벽에 그려진 당시 상황의 벽화>

 

 

어부들이 석상을 낙가산으로 옮기는데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니
석상이 무거워져서 꼼짝도 하지 않아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게되자
이곳이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때 석굴 안에서는 경 읽는 소리가 나고 은은한 향이 밖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없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스물 두 위의 석상을 좌대에 차례로 모셨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에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과 열 아홉분 나한님을 좌대에 모두 모시고 나니
 굴 안은 엄숙하고 신비한 영기(靈氣)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고,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부처님 앞에 엎드려 거듭 절을 하고 예경을 올렸다.

 

<석실의 내부구조를 보면...당시의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석굴 안은 30평 정도로 넓은 편입니다.>

 


그날 밤 꿈에 노스님이 다시 나타나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며 교만하거나 자만심을 버리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걷어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아들을 점지할 것이니라."

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
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 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들이라네.”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으며 모두 그 신령스러움에 감탄하였다.

 

그후  나한전은 기도의 영험함으로 사람들 사이에 신통굴로 불리기도 합니다.
  

 

 

 

2. 와불전과 500 나한상
 
 

와불전은 천인대 위에 조성된 전각입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와불전은 열반 당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전체 신장이 10m이고, 열반대는 13m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하겠습니다.
부처님 뒤의 1m 정도의 공간을 통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보문사의 와불 부처님은 누워 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衣)의 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 되어있고,
 상호(相好) 또한 평안하여 기도를 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갖게 해 줍니다.

 

 


와불전 옆으로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사리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 상은 오백분의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더군요

 

 


 

3. "용왕단"과 소원지

 

마애불로 오르는 길목에 용왕단과 용왕전이 있습니다.


서해 바다의 탁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용왕단에서는
각자의 소중한 발원을 담아 소원지를 써서 유리병 속에 100일간 보관을 합니다.


100일이 지난 후 용왕단에 보관된 소원지를 꺼내 스님들께서 축원을 하고 소전을 하게 됩니다

 

 

 

 

 

 

 

 

4. 눈썹바위와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스님과 더불어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에 조성한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입니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합니다.

 

 

 

 

 

 

 

 

 

그 옆에 아래위 거대한 바위틈 사이에
무슨인연으로 태어났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감동의 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그의 목에 염주를 걸어 줄만도 하겠더군요.

 

 

 

 

 

 내려와서 보문사 마당에 있는 용트림 하듯이 보이는  느티나무...
말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보문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상 제 눈길을 끌었던 몇장의 사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