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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삶

양주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와 現 회암사(檜巖寺)



양주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와 現 회암사(檜巖寺)



가족들과 함께 ...

동두천 지역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며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와 現 회암사(檜巖寺)모습을 눈으로 확인 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자료를 많이도 읽어 보았지만

너무 방대하여 감히 제가 새로운 글을 쓰기는 역부족 이기에  ...


인접하여 있는 "회암사지 박물관"에 기록되어 있는

일부 내용을 사진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먼져 "양주 회암사지[楊州 檜巖寺址]를 개괄"해 보겠습니다.


*  이 사진에 포함되어 있는  글 내용이  잘 안보일것 같아

별도 확대로 붙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왕으로 재임  기간중에도 자주 들렸다 하며 ...

추후에는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왕의 행차모습도 있더군요...













그후


불심이 깊었던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전국의 여러 불사를 직접 관장하거나 후원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회암사 중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종실록』에 의하면,

1472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문정왕후(文定王后)는 보우(普雨)로 하여금 회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케 하여

전국 제일의 사찰로 불교 중흥을 꾀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종 20년(1565) .. 불교를 크게 후원하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

 승려 보우(普雨)는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맞아죽었다네요..

 


 
아무리 왕권이라 하더라도 ..

당시 "숭유억불정책"으로 중들은  4대문안에 출입도 못할 시기였고


특히 이 사찰에  일반백성들도 많이 찾았다니 ...

 유림들에게는 크나큰 일이었겠죠~~~


 상소가 빗발치듯 하였다고 하며 ...

일부 조직적인 무력행사도 있었던 바 ...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회암사는 1566~1595년 사이

유생들의 조직적인 항거로  불태워지고  파괴된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인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이 쓴 천보산회암사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의하면 ....

그 당시 회암사의 완성된 건물의 총 칸 수는 262칸이었으며 ...

승려의 수만도 3,000명 이었으며

사찰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합니다.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답니다.


 
박물관 소장품중 ...

발굴,  조사 당시 그린 전체 조감도가 훌륭하더군요...


아랫부분은 "회암사지"이고 위에 현 "회암사와 부도군"이 보입니다.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 회암사의 중심부분입니다.

대웅전격인 보광전,  이성계가 머물렀던 정청 일대의 모습입니다.


발굴은 완료 되었고 .. 복원을 어찌 하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화재후에는 복원되지 못하고 폐사가 된 이후로 세월은 흘렀는데 ....


순조 21년(1821)에 광주 사는 이응준이라는 유생이

회암사 삼화상(三和尙)의 비석과 부도를 없애고,

그 자리에 선친의 묫자리를 쓰면 대길(大吉)할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


이응준은 지공선사비, 나옹의 부도, 무학대사비를 부수고

부도 안에 있던 금은으로 된 사리함도 훔쳤다고 하며 ...

지공의 부도를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순조는 이 사건을 보고받고 이응준을 유배 보냈답니다.

이 비는 태종의 명령으로 만들었고 태종이 언급되는 비석인데 이걸 박살냈으니 유배 갈 만하죠~~

 결국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와 부도를 세웠다고 합니다.


더불어  회암사지에서 700 m 정도 떨어진 북쪽 골짜기에

이 부도들을 지키기위하여 조그만한 사찰을  만들어 관리 하기로 하였는바


사찰 이름은 "회암사"의 이름을 계승토록  하였답니다.



그곳 현 회암사의 대웅전과  관음전 모습입니다.






조사전에는 지공선사.. 나옹선사 .. 무학선사 ..의 존영이 보관 되어 있었고 ..



<무학대사>





<지공선사>






<나옹선사>





그 옆에는 세분 선사의 부도와 석등이 잘 보존되고 있더군요~~



무학대사 부도입니다.

보물 388호로 지정되어 있구요~~~









이 쌍사자석등 역시  보물 389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입니다.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입니다.








회암사지 박물관입니다.

발굴 조사시  발견된 수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역사를 이해 할수 있구요~~~








사진 : 2019. 06. 19   화암사지, 화암사지박물관, 회암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