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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곤충 동물

나비 박사 석주명(石宙明 : 1908 ~ 1950)

[삶의 뜨락에서] 나비 닥터 석주명(石宙明 : 1908 ~ 1950)

    - 수필가/김바울님이 쓴   21. 05. 06 중앙일보 기사내용임  -



우연한 기회에 ‘나비 닥터’라는 새로운 뮤지컬을 링컨센터에서 관람했다.
 초청장에 영문으로 ‘Dr. Butterfly’로 쓰여 있고 나비가 그려져 있었지만,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비연구가 석주명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이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탄탄한 연기력과 화려한 조명 그리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는 뮤지컬이 많은 즐거움과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뮤지컬을 본 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 것은 "석주명石宙明" 이란 이름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어떻게 해서 그는 나비 닥터(Dr. Butterfly) 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가? 

 

 


석주명은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0년 6·25 전쟁 와중에 사망했다.
 짧은 42년 생애 동안 그는 나비연구에 매진하여 80여편의 논문을 썼다. 

그중에서도 1940년에 영문으로 출판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으로 인해 30명밖에 안 되는 세계나비학회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의 저서는 지금의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일제 치하 혼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 팔도를 떠돌던 나비들에게 이름(학명)과 주소(분포도)를 찾아주는데 일생을 헌신한 분이다. 

그는 나비분포도를 만들기 위해 한국 지도와 세계지도를 각각 250장씩 준비해서
 나비 한 종류에 지도 한 장씩을 사용해서
 나비가 사는 곳에 붉은 점을 찍으며 전국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다. 

일본·몽골·사할린·만주·대만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는 75만 마리 이상의 나비를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었다. 

한반도에 250종의 나비가 사는 것을 밝혀냈다.


 처음으로 발견한 나비들에겐 합당한 이름도 지어주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이름으로 
신부나비(천주교 신부들의 예복을 연상), 
굴뚝나비(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온통 검은색), 
유리창나비(날개가 투명해서), 
부전나비(부전은 어린애들의 장식용 노리개, 몸집이 작아서 귀엽고, 날개색상이 화려함), 
그리고 떠들썩 팔랑나비(날갯짓이 심해서) 등등이 있다.

나비를 연상하면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평화로운 대자연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들이나 산에서 이름 모르는 수많은 들꽃을 볼 때 
나비가 그 옆을 맴돈다면 보는 이마다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비 한 마리로 인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나비는 평화의 상징이다. 
사람의 정서생활에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곤충이다.


석주명이 나비 박사가 된 배경에는 좋은 선생의 충고가 있었다.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도이타케오 선생이다. 
그는 “집념의 의지를 가져라. 
티끌만 한 것도 유심히 관찰하라. 
한 분야에 10년간 집중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조선 한반도서 서식하는 나비연구를 권했다. 

석주명은 은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졸업 후 개성 송도고 생물 선생으로 있으면서 나비연구에 몰두했다.
 20년 동안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여 나비 표본을 완성하였다.

좋은 선생을 만나 귀한 충고를 듣는 것은 행복이다. 
나아가 그 충고를 실천에 옮기면 무한한 축복이 따름을 깨닫는다. 
그는 생전에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했다 한다. 
석주명이 ‘나비 닥터 석주명’이 된 비결이다. 


매일 여러 나비가 텃밭의 꽃들을 찾아오는데 
그들 중 석주명 선생이 이름 지어준 나비들도 오는가 오늘도 유심히 지켜본다.

 

 

 

출처 :  수필가/김바울님이 쓴   21. 05. 06 중앙일보 기사내용임